[중앙일보 장주영] 대학 졸업 뒤 오라는 프로구단이 없어 실업선수로 1년간 뛰었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에 와서도 2군에서 1년을 보냈다. 그리고 피나는 훈련 끝에 1군 무대에 올랐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프로축구 전남 드래곤즈의 공격수 고기구(28)의 이야기다.
고기구는 17일부터 24일까지 중국 충칭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팀에 10일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한국·북한·중국·일본 등 4개국이 참여하는 이번 대회는 풀리그로 우승팀을 가린다. 바닥에서부터 올라왔지만 이렇다 할 수상 경력이 없고,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던 고기구의 발탁은 의외로 여겨진다.
그는 2003년 숭실대를 졸업한 뒤 프로팀의 러브콜을 받지 못하고 내셔널리그인 할렐루야에 입단했다. 1m87㎝, 82㎏의 체격은 공격수로서 매력포인트였지만 세밀한 플레이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프로행도 우연히 이뤄졌다. 다른 감독들이 모두 외면했지만 당시 부천 SK 감독이던 정해성 현 대표팀 수석코치가 그를 눈여겨봤다.
정 코치는 “체격도 좋고, 조련하기에 따라서는 가능성도 충분하다”며 2004년 그를 부천으로 데려왔다. 하지만 ‘즉시 전력감’은 아니었던 듯 정 코치는 그를 1년 동안 2군에서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그 결과 고기구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투박했던 골 문 근처 플레이가 제법 정교해졌고 몸놀림도 기민해졌다.
축구 전문가들은 고기구에 대해 “문전 앞에서의 골 결정력이 뛰어나고 제공권까지 갖춰 대표팀의 고민인 ‘전문 공격수의 부재’를 풀어 줄 선수”라고 평가했다. 김대길 KBS SKY 해설위원은 “대개 장신 선수들은 좋은 제공권에도 불구하고 순발력이 떨어져 낙하 지점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고기구는 그런 점에서 센스가 있는 선수다”고 칭찬했다. 그는 또 “박주영을 혼자 원톱으로 내세우면 전술이 단조로워진다”며 “고기구의 합류로 박주영을 섀도 스트라이커로 활용하는 등의 전술 변화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에게 프로선수로서의 길을 열어 준 정해성 수석코치와의 인연도 새삼 화제다. 정 코치는 결정적 순간에 한 방을 해결해 주는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허정무 감독에게 적극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일부터 대표팀에 합류해 구슬땀을 흘리는 고기구는 붙박이 태극전사가 되겠다는 새로운 꿈을 향해 비상을 시작했다.
글=장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