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차타는이야기

비오는 아침 자출 하다보니...

와신 2008. 4. 17. 11:22

아침에 자출하는 길은 바쁘다...한정된 시간내에 출근해야하는 입장이고 보면,

딱히 그럴만도 하다. 맞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제법 열심히 페달을 돌려줘야 한다.

비오는 날은 당연히 자출을 포기하고 차량으로 출근을 했었다.

그러다보니,

유독 비가 많이 오는 올 봄엔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날이 많지 않았었던 것 같다.

한두번 빠지다 보면,

다시 나태해져서는 날씨 좋은 날에도 자출에 대한 게으름증으로 자출하겠다는 의지가 무너져 버리고는 했다.

 

자출을 하다보면,

꾸준히 마주치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인다.

특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입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수차례 마주친다면,

왠지모를 관심과 수인사 한번 나누지 않더라도 괜한 정감이 가게 마련이다.

 

집에서 출발해서, 4km 남짓, 아침 7시 10분, 보건소 부근쯤에서 매일같이 청바지 차림으로 옆구리에 책인지 서류인지를 끼고 걸어가는 아가씨 뒷모습을 지나쳐서,

7시 15분쯤 마리나호텔 사거리 가기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할머니 한 분을 매일 같이 마주친다.

칠순은 충분히 되셨을 연세이신 것 같은데, 내가 자출할때 보면 부인용 자전거를 타고 항상 그 곳에서 마주친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나처럼 자전거로 일터에 나가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자동차로 출근할때도 그 어르신은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 같았다.

 

오늘은 비가 왔다.

비가 와도 자전거로 출근하겠다는 계획을 한 후 첫 비요일 자출이다.

조금 가려니, 엉덩이도 축축하고, 헬맷 사이로 빗물도 엄청 쏟아진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없거니와,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자니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눈초리가 괜시리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심란하기까지 한 자출이다. 그나마, 복장 차려 입고, 일부러 화려한 형광색 자켓 걸쳐 두루고 있어, 불운한 여행객 쯤으로나 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로 버팅기며 페달을 밟아 나가는 중이다.

7시10분, 보건소 앞, 청바지 아가씨는 우산을 들고 걷고 있다. 마주오는 사람이었다면, 눈인사라도 해볼일인 것을.....

청바지 아가씨를 휑하니 지나쳐서 마리나 호텔 사거리...

매일 같이 출근할때 보이던 할머니 모습도 안 보인다. '그렇지! 그 연세에 비오는 날은 무리겠지!' 하면서,,,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으려니,맞은편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비옷까지 차려 입고 있는 모습이 늘상 그래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 하게까지 느껴진다. 온갖 요란스런 복장으로 자출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반하여 조용히 절제된 복장으로 자전거와 잘 조화된 세월의 흔적이 녹아 있는 할머니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생활화 시키려면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잘나가는 TV에 생활의 달인...어쩌고 하는 코너가 있듯이, 이 어르신이야말로, 자출의 달인이 아니었던가 싶다. 비가 좀 온다해서, 컨디션 좋지 않다고 해서....이런저런 이유로 자출하기 역시 힘들어! 하던 내 생각을 개조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자전거 동호인을 많이 만들자. 자전거 타기를 생활화 해서, 지구 환경을 줄이자, 고유가 시대 극복하자!

아무리 떠들고, 앞에 나서서 데모라이딩하며 폼잡고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고 움직이는 힘은, 일상적인 조용함 속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옳은 말일 것이다.

비가 오면 비옷을 꺼내 입고, 바람 불면 목도리 챙겨 두르고, 당연히 자전거 타고 자출하는 그날을 위하여 오늘 남은 자출거리도 그렇게 달리고 있는 중이다.

빗속의 그 어르신은 지금쯤 비옷 벗어 던지고, 포목점 가게문이라도 열고 계실 것인가? 아니면, 운동 끝내고 따뜻한 아래목에서 손자들 재롱방둥이라도 하고 계실까?

 

내일은 매일같이 어디 가시느냐고 인사라도 먼저 건네봐야겠다....

 

오늘의 자출얘기.. 끄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