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으로 알레르기를 고친다!
기생충의 모든 것
1. 되살아난 인간 사냥꾼. 숨막히는 기생충의 공포(서 민/단국대 의대 교수)
ㅇ 일년에 두 번씩 학교에서 채변 검사를 하고 봄·가을에 회충약을 먹던 것이 불과 10년 전이다. 과연 기생충은 사라졌는가. 최근 기생충 감염률이 33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가 즐겨 먹는 회 속에서, 함께 노는 애완견 속에서 기생충은 인간의 몸을 탐욕스럽게 노려보고 있다. 그렇다고 기생충이 마냥 악당만은 아니다. 때로는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곤 한다. 기생충은 인간을 죽이고 살리는 야누스적인 존재다.
ㅇ 요즘 기생충이 어디 있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기생충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바퀴벌레를 멸종시키는 게 불가능하듯, 기생충이 지구에서 박멸될 날도 여간해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기생충과 공존하는 것이 인류의 숙명이라면, 기생충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올바르게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그 일환으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기생충에 대한 진실 몇 가지를 알아보자.
1. 바다회의 진실양식이 아닌 자연산 민물회를 먹으면 기생충에 감염된다.
ㅇ 그렇다면 바다회는 어떨까. 짠 바닷물이 기생충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담도(쓸개와 십이지장을 잇는 관) 안에서 간디스토마가 별탈없이 사는 것처럼, 짠물이 수시로 오가는 바다생선의 몸 안에도 기생충은 많다. 그 중 하나가 광절열두조충이란 기생충이다. 연어회를 통해 사람 몸 안에 들어오면 장 속에서 몸을 포개가면서 길이를 늘려가는데, 긴 것은 10m에 달하기도 한다. 증상은 미약한 편이지만, 그렇게 큰 것이 우리 몸에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악할 일이다. 약을 먹여서 항문으로 꺼낸 벌레를 보고 입맛을 잃은 사람이 어디 하나 둘일까. 일본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연어 20% 남짓에서 이 기생충의 유충이 발견됐다.
ㅇ 현미경을 동원해야 볼 수 있는 간디스토마의 유충과 달리, 광절열두조충의 유충은 눈에 보인다. 그러니 연어회를 먹을 때 희고 기다란 뭔가가 발견된다면 먹지 말고 대학 의대 기생충학교실로 연락하시라. 기생충이 맞다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유충이 발견된 적이 없는 희소성을 감안해 볼 때 몇 만원의 사례비는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이것 말고도 바다생선에 거주하는 기생충은 많이 있다. 바다에 사는 모든 생선은 아니사키스라는, 고래 회충의 유충을 가지고 있다. 역시 회를 통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이게 사람 몸 속에 들어가면 위를 파고들어가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데, 워낙 사례가 많다 보니 환자가 나온다 해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을 정도다.
ㅇ 대부분 내시경으로 벌레를 꺼내면 되지만 재수가 없으면 맹장염에 걸릴 수 있다. 기생충 때문에 몸에 칼을 대는 건 좀 억울하지 않을까. 아니사키스는 원래 생선의 내장에 있다가 생선이 죽으면 근육으로 올라온다. 싱싱한 회를 먹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숭어에는 이름만으로도 해악을 짐작할 수 있는 유해이형흡충을 비롯해서 여러 종류의 장내 기생충이 들어있다. 숭어를 먹은 지 2주쯤 있다가 배탈과 설사가 생겼다면 십중팔구 장내 기생충에 걸린 것이다. 그럴 땐 당황하지 말고 의사에게 기생충이 의심된다고 말하면 된다. 회는 맛있는 음식이지만, 그 맛에는 분명 위험이 따른다.
2. 미친개보다 무서운 개회충
ㅇ 공원에서 개똥을 깨끗하게 치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개회충을 전염시킬 수 있다. 전남 광주 시내 초등학교 운동장과 대형 놀이터 27%에서 개회충의 알이 발견됐다. 2000년 강동성심병원의 박성표 교수는 개회충에 감염돼 눈이 손상된 환자 다섯 명의 증례를 학술지에 발표했다.
ㅇ 시력이 떨어지고 눈에 뭔가가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병원에 갔더니, 개회충에 의해 망막이 얇게 벗겨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환자 중 개를 키우고 있는 사람은 두 명 뿐이었지만, 개를 안 길러도 개회충에 걸릴 수 있다. 어떻게?
ㅇ 개회충에 걸린 개가 공원 같은 곳에 변을 보면 개회충의 알이 흙 속으로 들어간다. 그 알들이 흙장난 같은 경로를 통해 사람 입으로 들어가면 망막박리 같은 심각한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 전남 광주 시내 초등학교 운동장 36곳과 대형 놀이터 14곳에서 150개의 시료를 채취해 토양오염 실태를 조사한 결과 40곳(26.9%)에서 개회충 알이 발견된 바 있다. 개의 수를 감안한다면 개회충에 걸릴 확률은 생각보다 높다.
ㅇ 사정이 이런데도 개 주인들은 꼭 개를 집 밖으로 끌고 나가 똥을 누인다. 이를 통해 아무것도 모른 채 흙장난을 하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식전에 손을 잘 씻지 않는 어른들에게 개회충 알을 전염시킨다. 몸 안에 들어간 개회충은 대부분 간으로 가서 미미한 염증을 일으키다 죽지만, 일부는 혈류를 타고 눈으로 가서 망막박리 등을 일으킨다. 이렇게 본다면 밖에서 개들이 대변을 보는 행위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잠재적 범죄’다. 개 머리를 분홍색으로 물들이고 리본을 묶어주는 것보다 기생충 검사를 해주는 것이 개를, 나아가서는 인류를 더 많이 사랑하는 길이다.
3. 회충약 무작정 먹지 말자
ㅇ 공황장애는 기억하기 싫은 끔찍한 사건을 경험한 뒤 불안한 심리가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회충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은 공황장애와 비슷하다. 1971년 전국민 대변검사 결과 우리 국민의 평균 기생충 감염률은 84%에 달했고, 그렇게 높은 감염률을 주도한 기생충은 회충이었다.
ㅇ 회충은 55%라는 감염률도 그렇지만, 몸길이가 30cm에 달하는, 다른 기생충에 비해 월등이 좋은 신체조건으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특히 영양실조로 사망한 여자아이의 몸에서 1000마리가 넘는 회충이 나왔다는 뉴스는 회충을 기생충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회충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된 것은 그 무렵부터다(나이 든 기생충학자의 대부분은 회충이 좋아서 기생충학을 전공했다).
ㅇ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회충의 감염률은 불과 0.1%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금도 이따금씩 회충 환자가 발견돼 기생충학자를 반갑게 하지만, 회충은 이제 거의 사라진 상태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회충에 대해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봄·가을에 회충약을 먹는다. 이게 공황장애의 한 종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ㅇ 지금은 회충보다는 간디스토마나 장디스토마 같이 민물고기 회를 매개로 전파되는 기생충이 더 유행하고 있다. 이런 기생충은 프라지콴텔이라는 약을 먹어야 치료가 된다. 회충약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요충을 치료할 때에 국한해야 한다. 요충은 전염력이 높아 생각보다 감염률이 높으므로, 아이가 항문이 가렵거나 배가 아프다면 혹시 요충이 아닐까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4. 에이즈 환자를 노린다.
ㅇ 약자를 괴롭히면 욕을 먹기 십상이지만, 기생충은 그런 평판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어떤 이유로든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이라면 기생충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에이즈 환자의 사망 원인 80%가 기생충이라는 사실은 기생충의 비열함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그런 기생충 중 하나가 톡소포자충이다. 이 기생충은 멀쩡한 사람에게 감염되면 열이 좀 나고 림프선이 붓는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면역이 약한 사람에서는 뇌에 병을 일으키는 등 온갖 나쁜 짓을 다 한다. 임산부가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면 머리에 물이 차고, 눈에 염증이 나는 등 기형을 동반한 어린아이를 낳을 수 있다. 이 기생충이 전파되려면 먼저 고양이의 몸 속에 들어가야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톡소포자충에 걸린 쥐는 고양이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등 기이한 형태를 보인다고 한다.
ㅇ 칼 짐머가 쓴 ‘기생충 제국’을 보면 이는 톡소포자충이 자신의 전파를 위해 쥐의 행동을 지배하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머리가 무지하게 좋은 기생충이 틀림없다. 지식산업이 세상을 지배하는 21세기에는 이렇게 머리 좋은 기생충들이 범람할지도 모르는 일. 길거리에 야생고양이가 부쩍 늘어난 것도 혹시 톡소포자충의 음모가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
5.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는법
ㅇ 한국인이 좋아하는 삼겹살. 기생충에 대한 공포로 삼겹살을 태워 먹으면 오히려 암에 걸릴 수 있다.고깃집에 가면 돼지고기를 까맣게 익혀서 먹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적당히 익어야 맛도 있고 잘 씹힐 텐데, 새까맣게 타서 딱딱해진 고기를 대체 무슨 맛으로 먹을까? 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
ㅇ “돼지고기는 바싹 익혀서 먹어야 해.” 사람의 대변을 먹여서 키운 돼지가 ‘제주도 통돼지’로 팔리던 시절, 돼지의 근육 속에 있던 기생충은 사람 몸으로 들어가 몇 미터에 달하는 갈고리촌충으로 자랐다. 길고 꿈틀거리는 기생충의 조각을 대변과 더불어 내보내는 건 귀엽게 봐준다 해도, 몸 안에서 생긴 기생충의 유충이 사람의 뇌로 들어가 증상을 일으키는 건 두렵기 짝이 없다. 후자의 병명을 ‘유구낭미충증’이라고 부르는데, 돼지고기를 바싹 익혀서 먹어야 한다는 신화는 바로 여기서 탄생했다. 맛있는 삼겹살을 먹고 뇌에 병이 생기는 걸 원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ㅇ 하지만 돼지에 대한 검역이 강화되고, 돼지에게 대변 대신 사료를 먹이면서부터 갈고리촌충은 점차 사라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을 마지막으로 돼지에서 이 기생충이 발견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구낭미충증 환자는 꾸준히 발견돼 돼지고기에 대한 공포감을 증폭시킨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ㅇ 사람의 뇌 속에 들어간 갈고리촌충의 유충은 오랜 기간, 길게는 20년까지 살아 있다가 수명이 다해 죽으면서 각종 증상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 지금 누군가가 유구낭미충증 환자로 판명된다면 그건 20년 전에 남보다 먼저 먹으려고 불그스름한 삼겹살을 먹은 탓이지, 몇 달 전에 가족끼리 먹은 삼겹살 때문은 아니다. 그러니 안심하시라. 삼겹살은 적당히 익었을 때 먹어도 된다. 탄 걸 먹으면 암에 걸린다는 말도 있는 만큼, 멸종된 갈고리촌충에 대한 지나친 공포는 스스로의 건강을 해친다.
2. 알레르기 잡아먹는 기생충. 인간 돕는 고마운 기생생물(김상연)
ㅇ 1999년 국내 신문에 기생충을 뱃속에서 기른 ‘괴짜’ 의사의 이야기가 실렸다. 일본 도쿄의치대 후지타 고이치로 교수가 주인공이다. 후지타 교수는 자신의 장 속에서 촌충을 3년이나 길렀다. 당시 촌충을 구하기가 어려워 그는 어시장에서 불결한 생선을 골라먹고 겨우(?) 촌충에 감염됐다고 한다. 촌충은 장의 길이보다 길어지면 항문을 비집고 나온다. 후지타 교수는 빠져나온 촌충을 조금씩 끊어 연구재료로 썼다. 후지타 교수는 “기생충에 감염되면 좋은 점도 있다”며 “콜레스테롤과 체중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불필요한 영양분과 지방을 촌충이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너무 뚱뚱해지자 일부러 촌충에 감염돼 6개월 만에 105kg에서 55kg으로 몸무게를 뺐다는 이야기도 있다.
ㅇ 기생충에 감염되면 알레르기 줄어과연 영양 과잉의 현대인에게 기생충은 비만을 막는 동반자가 될까. 후지타 교수의 ‘엽기’ 주장이 현실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기생충은 현대 의학에서 꼭 나쁘거나 귀찮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기생충을 이용해 병을 치료하거나 생명의 비밀을 푸는 연구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기생충을 이용해 병을 치료하는 연구로는 단연 알레르기가 꼽힌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이뤄진 역학 조사 결과 기생충 감염과 알레르기 질환의 수가 반비례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봉, 에쿠아도르, 잠비아 등의 역학 조사에서 기생충 감염이 천식 증상을 완화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ㅇ 왜 기생충에 걸리면 알레르기가 줄어들까. 연세대 의대 신명헌 교수는 “알레르기 반응은 면역 시스템이 특정물질에 대해 지나치게 반응한 것”이라고 말한다. 기생충에 감염되면 면역 시스템이 기생충을 공격하느라 에너지가 줄어들어 알레르기도 함께 감소한다는 것이다. 알레르기와 기생충 감염률은 반비례한다는 보고가 있다. 기생충이 지나치게 과민한 면역 시스템을 가라앉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에서는 기생충 감염이 줄어든 1930년대 이후 면역 체계의 과민 반응으로 생기는 장염과 크론병이 증가했다는 보고가 있다. 기생충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기생충 감염률이 떨어지면서 아토피 피부염이나 천식 등 알레르기 질환이 늘어났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ㅇ 과학자들은 면역글로블린E(IgE)라는 항체를 기생충과 알레르기의 연결고리로 주목하고 있다. 이 항체는 우리 몸에서 기생충을 공격한다. 동시에 히스타민의 분비를 촉진해 알레르기가 일어나게 한다. 즉 우리 몸이 기생충에 대항하기 위해 이 항체를 만들었는데 막상 기생충이 없으니 엉뚱한 것들을 공격하는 셈이다.
ㅇ 그렇다고 알레르기나 대장염를 치료하기 위해 몸 안에 기생충을 달고 살아야 할까. 상식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 기생충 연구는 신약 개발과 새로운 치료 기술로 이어진다. 신명헌 교수는 “기생충이 우리 몸에서 오래 살아 남았다는 것은 우리 몸을 그리 손상시키지 않고도 면역 시스템을 피하는 기술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즉 기생충이 면역 시스템을 억제하는 물질을 분비하거나 직접 면역 세포를 죽인다는 것이다. 2004년 4월 ‘면역학 회보’에는 피 속에 기생하는 선충에서 염증을 억제하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했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신 교수도 장에 기생하는 아메바가 면역세포를 죽이는 과정 일부를 밝혀내 올해 4월 ‘면역학지’에 발표했다.
ㅇ 염증을 치료하는 약으로 가장 유명한 아스피린의 주성분은 처음에 버드나무 껍질에서 발견됐다. 기생충에서도 효과적인 염증 치료제 등 신약이 개발될 수 있다. 특히 기생충이 특정 세포를 죽이는 과정을 잘 응용하면 암세포를 골라 죽이는 기술도 가능하다. 신 교수는 “기생충이 신약 후보로 갖는 장점은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공존했다는 사실”이라며 “기생충 신약은 부작용이 훨씬 적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ㅇ 이미 기생충으로 신약을 만드는 과학자들이 있다. 칼 짐머가 지은 ‘기생충 제국’에서는 십이지장충으로 알려진 구충에서 외과 수술용 혈액 희석제를 개발하려는 미국의 한 생명공학 업체를 소개하고 있다. 구충은 피를 빨아 먹기 위해 혈액 응고 단백질의 작용을 방해한다. 이 과정에서 구충이 분비하는 물질을 약으로 개발하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선충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많다. 선충 중에는 다른 생물의 몸 속에 사는 기생충도 있지만 독립생활을 하는 것도 있다.미국 아이오와대 조웰 웨인스탁 박사는 더 ‘엽기적인’ 약을 기생충을 이용해 개발하고 있다. 아이오와대 의대 연구진은 1997년 궤양성 대장염에 걸린 환자 7명에게 동물의 장에 사는 기생충의 알을 몰래 먹였다. 이들은 기존 치료법이 전혀 듣지 않았던 환자였다. 2주 뒤 기생충 알이 부화하고 유충이 태어나면서 6명이 병에서 나았다.
ㅇ 웨인스탁 박사는 이점에 착안해 돼지편충알을 이용한 면역강화제를 만들었다. 돼지편충은 인체에 살 수 없어 알에서 깨어난 뒤 몇 주 머물다가 배설된다. 그 사이에 인간의 면역계를 자극해 항체를 많이 만들고 면역계를 안정시킨다. 물론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면역 기능이 크게 떨어진 환자들이 대상이다.
ㅇ 암 공격하는 기생충
- 덜 익은 돼지를 먹으면 걸릴 수 있는 갈고리촌충. 일본에서는 촌충에 일부러 감염돼 살을 빼는 연구도 이뤄졌다.더욱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있다. 아직은 가설이나 구상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실현만 되면 기생충을 인간의 좋은 친구로 격상시킬 것이다.
- 하나가 기생충으로 암을 치료하려는 것이다. 서울대 의대 채종일 교수는 “톡소포자충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되면 몸 안에서 자연살해세포라는 면역세포가 늘어난다는 보고가 있다”고 밝혔다. 자연살해(NK)세포는 혈액 내 백혈구의 일종으로 체내에서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특공대’ 면역세포다. 연구팀은 2, 3년 전 쥐를 대상으로 암과 기생충의 관계를 잠깐 연구했지만 아직은 결과가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 인슐린을 만들지 못하는 당뇨병 환자를 기생충으로 치료할 수도 있다. 당뇨병 환자가 맞는 인슐린 주사를 유전자 변형 기생충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성균관대 의대 공윤 교수는 “우리 몸에 큰 해가 없는 기생충에 인슐린 유전자를 삽입한 뒤 인체에 감염시키면 몸 안에서 계속 인슐린을 분비할 것”이라며 ‘인슐린 기생충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 기생충은 결코 필요없는 존재가 아니다. 기생충은 생태계의 균형을 조절한다. 지금은 ‘기생’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공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물이 수컷과 암컷으로 성이 나눠진 것도 기생충과 병균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생물학 이론도 있다. 미래에는 기생충이 애완동물만큼 인간의 사랑을 받을지도 모른다.